다니던 직장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무얼 해야하나 고민끝에 지인으로부터 학교급식실이 매리트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학원을 다녀 한식조리기능사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대체인력으로 두달반짜리 계약 후 다시 1년 다시 6개월짜리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그 동안 중식조리기능사자격증도 취득하고 교육청 교육공무직 모집부분에 서류를 넣어 정정당당히 합격했다.
면접 합격하던 날 교육공무직에 합격했다고 주위에 많은 분들이 축하 메세지를 보내주셨다.
이제 나도 교육공무직 정규직이다라며 앞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1월 신규교육을 마치고 3월 1200명 가량의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전에 대체인력으로 일 했던곳은 1300명의 초등학교
첫날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하루가 지났다.
하루를 무사히 보냄에 감사를 느꼈다.
전쟁터를 방불케했던 아침8시반부터 오후 퇴근시간까지는 화장실 갈 시간도, 물을 마실 시간도 잠시 쉴 시간도 허락치않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 지나고 이틀, 일주일
그리고 한달, 급여를 받았다.
정식으로 교육공무직에 합격해 열심히 일한 후 받은 급여는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알았다.
나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라는 걸
그나마 다행인 것은 1년 후 재계약 하는게 아니고 정년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이라는 것을.
이런게 비정규직이구나 방학이 낀 달은 급여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7월은 방학이 끼여 반정도 일했다.
급여는 반토만 8월도 반토막
다음해 1월 중순경 겨울방학을 맞았다. 급여 반토막.
2월 청소일 수 4일과, 명절 상여금을 포함해 받은 금액에서 세금을 제하니 2월 급여는 20여만원 정도 이걸로 한 달을 살 수 있을까 외벌이라 한 달 공과금도 해결하기 힘들다.
남편은 교육공무직으로 학교 급식실에 발령받은지 3개월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학교 일에 적응하기도 전에 남편이 곁을 떠나고 두 아이들과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무생각도 없이 일만 했다.
그래야 사니까 정규직 비정규직 그런 생각도 못하고 61세까지 일할수 있다는 무기계약직에만 초점을 맞추고 일했다.
급식실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의예로 가장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럼 그 사람들 생계는 어떻게 하나?
그렇다고 퇴근 후나 방학 때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이중 취업이 되어 학교에서 허락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방학 때 생계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있을 때는 방학 때 쉬어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일해서 두 아이들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일하면서 일하는 것에 비해 급여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수 150명당 조리원 한 명 일의 강도는 굉장히 쎈 편이다.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대로 힘들고 중고등학교는 중고등학교대로 애로사항이 많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내 직업 내 일자리이다보니 군소리없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교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도 그해 여름 총파업을 하고 서울 집회를 다녀오며 알았다.
그동안 나는 우물안 개구리였다는것도 새삼 느꼈다.
남편의 그늘 아래 남편의 보호속에서 잠깐 잠깐 일하다가 막상 혼자되어 살아보니 세상은 내가 생각한대로 돌아가는게 아니었다.
비정규직도 많고! 무기계약직도 많고! 아예 비정규직에도 끼지못하는 사람들! 최저임금도 못 받는사람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소리를 내야하고 누군가는 행동을 해야하고 누군가는 그 행동에 맞춰 이러한 불공정한 세상을 바로 잡기위해 싸워야한다는 것을...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이리 많았나?
무슨 비정규직이 이리 많을까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비정규직이 많다.
작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개사한 학교를 빛낸 100인의 보물들이란 노래를 하면서 학교에도 비정규직이 이리 많았나 싶을정도로 많은걸 보고 놀란적이 있다. 들어보지도 못한 여기저기 곳곳의 비정규직들!!!
알면 알수록 세상이 너무 불공정하구나
대한민국은 비정규직 천지라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까?? 갑자기 의구심이 생겨 씁쓸한 마음 뿐이다.
처음엔 당연히 학교에는 정규직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안을 들여다보면 비정규직 천지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할때 학교지킴이 선생님을 만나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받을때는 정규직 교사와 또 구별이 되지 않는 많은수의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들의 수업을 받는다. 오후엔 돌봄전담사, 방과후교사 쌤들의 돌봄과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또한 급식실에서는 조리원, 조리사, 영양사등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그날의 급식을 전담한다 이렇듯 학교의 하루는 무기계약직 기간제교사등 많은 비정규직 쌤들과 하루일과가 함께 진행되고 마쳐진다.
몸이 아파 쉴 때도
집에 일이 있어 쉴 때도 결코 편안하게 쉴 수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내가 쉬므로 동료들의 힘든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쉬는 것도 쉽지가 않고 일하는 도중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정해진 시간안에 요리가 완성 되어야하고 배식도 맞춰서 잘해야한다.
혹 배식양 조절을 잘못하여 나중에 오는 학생들에게 배식을 못하는 날엔... 배식사고에 따른 압박감과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는다.
언젠가 그날 메뉴에 탕수육이 있었다. 수제탕수육을 하는 날인데 아침부터 쉽지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내가 튀김옷을 입혀 기름솥에 넣어주면 파트너가 튀기고 건지는 일을 했다.
워낙 많은 양이라 튀겨도 튀겨도 줄지를 않고 배식시간은 다가오고, 피말리는 시간을 보내는데 조리사님께서 얼른 코팅솥 하나를 올려 같이 튀기라고 하셨다. 겨우 겨우 배식직전 튀김을 끝내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손만 겨우 씻고 배식에 들어갔다. 점심식사는 생각지도 못하고 끝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지금 다시 떠올려도 정말 맘졸이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늘 시간에 쫓겨야하고 배식량도 조절해야하고 특히나 안전에도 신경 써야한다.
바쁘다보니 종종걸음으로 다니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렌즈 벨브나 기구들 모서리에 부딪쳐도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우선 눈앞에 쌓인 일처리가 늘 먼저다.
일을 마치고 씻을때 보면 다리 여러저기 몸 여기저기 멍이 드는 건 예삿일이다. 물론 조심하지 못한 본인 책임이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바쁜 조리실 안에서 안전하게 일한답시고 천천히 일하라고 하는건 어불성설이다.
또한 청소할때도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독한 약품 사용과 무거운 트렌치 세우는 일도 회전솥 위의 후드청소도 위험하고 뜨거운 물 사용할때도 위험은 언제나 우리곁에 도사리고 있다.
교육받을 때 독한 약품 사용이 우리 몸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안전하게 사용하라는 말을 듣는데 왜 굳이 독한 약품 사용하면서 그러한 교육을 하는지 교육하시는 강사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단체급식이다보니 세균 때문에 이러한 약품을 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하게 사용하라는 강사님의 말씀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점검 나올때 어느 정도의 얼룩과 세균은 넘어가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거는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독한 약품 사용과 위험천지인 이곳에서 나는 왜 일 하는가, 안하면 되지?
안하면 우리 아이들의 급식은 누가 해 준단 말인가
누군가는 해야되고 그 누군가는 바로 나인 것이다.
급식실 일이 하고 싶어 내 스스로 결정하고 들어왔다. 힘든 일도 있지만 이렇게 모두 힘든일만 있는건 아니다. 아이들이 급식을 맛있게 먹어 주고 맛있는 급식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 들을때는 정말 뿌듯하고 이 일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그럴땐 모든 피로와 일하면서 느꼈던 고통이나 힘듦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조리원 한명 당 학생수 150명이 아닌 100~120명정도로 해준다면 우리의 일이 조금은 덜 위험하고 덜 힘들 것이라 한다.
그럼 산업재해도 덜 발생하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학교급식실일은 딱 10년만 해야 한다.
안그럼 병원 달고 산다.
실제로 10년 넘은 직원들은 손가락 관절과 어깨통증 무거운걸 들고 다니니 허리통증에 디스크 거기다 손목터널증후군 다리 통증 또한 종종걸음으로 다니다보니 족저근막염같은 걸 달고 산다.
수술하면 되지않냐고 하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회복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최후보루로 남겨놓는다.
그 외에도 너무 힘들어서 !!
적응을 못해서 !!
다쳐서 !!.
아파서 관두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렇듯 각종 위험과 고통이 따르지만 이 속에서 우리는 여성노동자로서 귄리를 찿고 동료애를 느끼고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즘은 맛벌이부부가 많다보니 요리를 할시간도 없고 못하는 사람들에겐 학교에서 먹는급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 예로 동생은 공부만 하던사람이라 요리를 정말 못한다 그래서 학교급식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조카들 방학만 되면 아이들 밥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코로나로 인해 전체학생 등교가 중지되면서 격주로 학교를 가다보니 급식을 못해 아이들이 점점 더 말라가고있다는 말을 들었다. 배달음식도 질렸고 동생은 요리를 못한 데다 직장이 타지역으로 발령나다보니 집에는 아빠와 아이들뿐이라 집안일은 고사하고 먹거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우리가 해주는 점심 한끼이지만 그 한끼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한끼 식사인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할만하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큰?일을 하는 우리에게 오는 급여라든가 복지는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때만이라도 어느정도맞춰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기계약직이 어떻게 정규직이란 말인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이라 할 수 없다.
정규직이라면 방학때 기본급이라도 아니 기본급에 몇10프로라도 줘야 되지 않은가.
방중 비근무에 !
무노동무임금 !!
방중 기본급얼마라도 주든가
허울뿐인 정규직 이건 결코 정규직이라 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놀면서 기백만원씩 받아가면서 무슨 파업이냐고 난리다 하지만 속내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말 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격려를 해주면서 몸 관리 잘하라고 한다. 이것이 방학중 비근무자가 처한 현실이다.
나 포함 외벌이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집안일하며 직장생활하는 전국의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좋은 소식 처우개선을 위해 오늘도 교육청 뙤얃볕마당에서 열일하는 우리노동조합상근자들
부디 교육청에서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우리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머리를 까까중으로 깎은 학생이 있었다. 급식먹으러 오면 늘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고 더 달라고 했을때 남은 학생들의 배식량 때문에 미안하다 다음엔 더 많이 줄께라고 말하면 그럴 때마다 에이C에이C를 남발하고 거의 반항수준인데 등치큰 남학생이라 어떻게 나올까봐 내심 무서웠다.
그러길 여러차례 같이 화낼수가 없어 우리가 반항기와 불만투성이인 중2병학생을 살리자고 다음부터는 좋은말로 타이르기로했다. 또한 급식량도 더 많이 주며 맛있게 먹고 건강하란 말로 하다보니 차츰차즘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고 인사도 안하고 퉁명스럽던 말투가 몇개월 지난 뒤에 부드러운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중3이 되어서 다시 만났는데 우리가 알아 볼 수 없었다 키도 더크고 머리도 길고 하니 정말 훈남학생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급식실에서 보통 밥하는 아줌마로 통하지만 한사람의 인생에 좋은 점을 끼쳤다는게 얼마나 뿌듯한지. 급식실에 오는 학생들 우리는 그냥 밥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전국에 있는 우리 급식실 선생님들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끼며 안전하게 일해보고자 한다.
무기계약직이 아닌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는 그날까지
방학중 비근무로 생계걱정을 해야하는 방중비근무자들의 급여와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조합원들 승리하여 우리의 안전한 생계를 보장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