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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교비정규직작품공모전 장려상] 김숙희 / 나의 하루

  • 학비노조
  • 2106
  • 2021-11-30 12:29:01
 
나의 하루

 
조리실무사 김숙희
 

온 몸의 관절 마디마디가 툭툭 끊기는 느낌과 함께, 나는 오늘도 학교로 향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밤새 밀린 빨래를 하느라 녹초가 된 나는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학교에 도착하여 준비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까지 약 4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몇 백명 아이들의 급식을 준비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영양사에게 각자 담당한 메뉴의 조리방법을 다시 한 번 익히고, 이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군대에서 볼 법한 많은 양의 재료를 씻고 다듬은 뒤 무거운 솥을 이리저리 옮긴다. 욱신욱신 몇 달째 지속되는 손목의 염증은 나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튀김 메뉴가 있는 날이다. 180도가 넘는 기름의 열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땀은 비오듯이 쏟아진다. 조리실은 이미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치는 재료를 뒤섞기 위해 삽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점점 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배식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바트에 나눠 옮기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12시가 땡하고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내려온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오늘의 급식을 기대하며 한껏 신이난 눈치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힘들었던 시간은 싹 잊히고 뿌듯함만 남는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며 쌍따봉을 날려주는 아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힘든 일들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아이들의 배식이 끝난 후 동료들과 늦게서야 점심을 시작한다. 전쟁과 같은 오전 근무가 끝나고 진이 빠져버렸지만 오후 근무를 위해 밥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10분만에 후루룩 삼켜버린다. 식어버린 밥과 잔반들이지만 고된 일을 했던 터라 꿀맛이 따로 없다. 식사를 빠르게 끝마치고 8명의 사람이 발을 뻗기도 힘든 비좁은 휴게실로 가서 다리를 구부린 채 앉는다. 고작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이지만 동료들과의 휴식은 천국과 같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닮아 보여서일까, 급식일로 인해 안 아픈 곳이 없는 동료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지쳐보인다. 무거운 솥단지를 옮기느라 허리와 어깨는 나간지 오래, 이제는 어떤 병원도 소용이 없다. 앉아 있을 틈 없이 계속 서서 일하는 다리의 하지정맥류는 나아질 기미를 안 보인다. 진하게 탄 믹스커피 한 잔에 조리원의 애환을 애써 날려보내며 짧지만 달콤했던 휴식을 마무리한다.

배식이 끝난 후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식판과 음식물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독한 약품으로 무릎에 독이 올라 고생했던 것을 떠올리며 요리조리 피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식판에 딱딱하게 붙은 밥알을 떼어내기 위해 뜨거운 물과 세제를 섞어 초벌 설거지를 시작한다. 매캐한 수증기는 이내 조리실을 메우고 펄펄 김을 내뿜는 세척물에 이리저리 손을 담구었다 빼내며 연신 기침을 한다. 커피와 함께 식어버린 땀은 다시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 손이 저리고 팔이 올라가지 않아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오늘도 당분간 팔을 쓰지 말고 무리를 해선 안된다는 의사의 반복되는 말에 의무적인 대답만 하고 병원을 나선다. 물리치료가 끝난 뒤 집으로 가는 길에 가족들을 먹일 음식을 위해 장을 본다. 무거운 장바구니로 인해 팔이 더 아파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학교에서도 내내 서서 일만 한 탓에 집에 오면 누워서 푹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청소며 음식이며 집에 할 일이 잔뜩 쌓여있기에 나는 바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오후 열시, 집안일을 마친 나는 내일 다시 험난한 급식실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지만 내일 나갈 급식의 메뉴와 조리법을 마지막으로 익히며 쓰러지듯 잠을 청한다.
 
 
이것은 10년이 넘도록 해온 나의 급식실 조리원의 하루를 담은 일기다. 출산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신경써야 하는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더 잘 먹이고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급식실 조리사 일을 시작했다. 그 조그만한 아이들은 이미 의엿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아이들의 커져버린 키만큼 나의 15년 동안 보낸 조리실에서의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고된 육아와 일의 병행은 자신만만했던 내 젊음을 가져가고 관절염을 돌려주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달려왔다. 결혼과 출산으로 단절된 경력으로 인해 나에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펄펄 끓는 물과 기름에 여기저기 화상을 입고도 버텨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되지만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요새 열악한 학교 급식실의 실태를 다룬 기사를 여럿 접하였다. 조리흄으로 인해 폐암으로 숨진 여성 노동자의 첫 산재 인정 기사,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조리실과 발을 뻗을 수도 없는 휴게실에 다닥다닥 붙어서 쉴 수밖에 없는 조리원들, 조리원 정원 감축 등을 다룬 기사는 여기저기 보이지만 정작 우리의 조리실 일상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조리, 배식, 방역으로 인한 삼중고로 이미 노동의 강도는 한계에 도달했다. 조리원 한 명당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시차 배식과 가림막 청소 등과 같은 추가업무는 정해진 노동 인원으로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더 심각한 것은 열악한 조리실의 환경이다. 180도가 넘는 기름으로 인한 내부의 자욱한 연기와 열기는 환기가 잘되지 않는 탓에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 턱없이 좁은 조리실에서 조리양에 비해 환기 용량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며 조리 시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눈과 호흡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촉박한 시간 속에 빠르게 조리해야 하는 급식실 특성상 연기로 인해 눈이 따가운 채로 미끄러운 조리실 바닥을 이리저리 뛰어가며 움직여야 하는 까닭에 안전사고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식판 사이, 식기나 개수대 사이에 끼이는 사고는 물론,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뜨거운 식기나 기름에 데이는 산업재해는 흔한 일이 되었다. 체감 온도는 44도 가까이에 육박하고 열기로 인해 조리복은 이미 땀으로 적셔져 있다. 이런 작업 환경에서 오랜 초고강도 노동으로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지 않은 동료들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저마다 손가락, 어깨, 허리, 무릎 등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은 조리 업무를 하기 위한 제 역할을 못하게 된 지 오래다. 위험한 조리실 안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조리원들은 언제 다칠지 모르는 상태로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다.

과거보다 여성의 직업이 다양해지고 일을 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이 나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가 않다.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청소노동자, 급식실 조리원과 같이 근무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높은 강도의 업무를 견뎌내며 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최소한의 근무환경을 보장한다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대로 설치된 환기 시스템과 적절한 인력배치, 위험한 조리실 속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급식실 조리원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한 조리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건강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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