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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교비정규직작품공모전 최우수상] 이옥랑 / 15년차 비정규직 학교생활 레시피. 열정 양껏, 행복 맘껏. 쓰린맛 조금, 아린맛 조금.

  • 학비노조
  • 1772
  • 2021-11-30 11:51:15
 

15년차 비정규직 학교생활 레시피. 열정 양껏, 행복 맘껏. 쓰린맛 조금, 아린맛 조금.
 

특수교육실무사 이옥랑


# 선생님 책 읽어주세요
운동장에서 고추잠자리를 잡다가 교실로 들어갔을 때였나? 집에서는 수다쟁이. 학교에선 한마디도 않던 선택함묵 학생이 내게 입을 열었다. 순간, 그 아이의 입에서 쩍!!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선생님!! 책 읽어주세요.” 그때의 감동과 전율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아이의 그 한 마디가 15년 동안 나를 있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고 보람찬 기억이다. 그러나!! 믿고 맡기셨다 생각했는데 ‘관망’이셨나 보다. 쉬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다 맛보게 된 이날의 기억은 아픈 충고!!가 들러붙어, 행복과 쓰림이 세트로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2007년 2월,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 특수교사 선생님이 내게 작별인사로 건넨 한마디 셨다. 순간, 얼어버렸다. 뭐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옮겨가서는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씀인가? 멘붕이었다. 해서, 나의 1년을 되돌아보았다. 특수학급 내의 수업시간엔 학생들을 거의 내게 맡기시고 선생님은 다른 수업을 준비하셨다. 선생님이 주신 문제집은 유치원 책이어서 풀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나머지 시간은 동화책을 읽었는데 나 한쪽, 너 한쪽 읽기, 구연동화 들려주기, 동화 장면 그리기 등등.. 동화책을 가지고 한참을 놀아주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원래 자기 반인 통합반으로 돌아가는데 도움반 친구들은 통합반 친구들에게 섞이지 못하고 도움반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나는 그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유치원 앞 모래밭, 소나무 아래 벤치, 덥거나 추울 땐, 도움반과 도서실에서 쉼 없이 재미나게 놀아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칭찬받아 마땅한데 “거기 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 한 마디에, 나의 1년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듯, 너무 참담했고 ‘학교에서 나는 뭐지?’ 하며 내 정체성에 혼란마저 겪었다.
 
# 보조원
그런 충고를 들었음에도, 아이들 졸업식에 선물을 들고 찾아갔었다. 내 일을 너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까지 했던 나는! 열정이 과한 특수교육 보조원이었다. 그랬다!! 그때는 직명도 보조원이었다. 보조원이 보조만 해야지, 아이들과 너무 주도적으로 학교생활을 한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선 그리 뒀지만 다른 학교에 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셨나 보다. 아이들과 책을 가지고 열심히 놀아주었고 그 결과, 선택 침묵 학생이 학교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상을 받아 마땅한 나의 행동은, ‘보조와 지원’에만 그쳤어야 했는데, 첫 열정을 아이들에게 너무!!! 쏟아부은 실수를 하고만 것이다. 선을 지켰어야 했다. 가르치고 아이들에게서 성과를 내는 것은 교사의 업무이지 보조원의 업무가 아니었다. 그래, 내 잘못이다.
2021년 5월. 올해다. 고등학생을 맡아 지원!! 하는데 체조시간이었다. 아침에 새천년체조로 일과를 시작하는 체조시간이었는데 다른 반에, 다른 학년 학생들까지 갑자기 많은 아이들이 체육관에서 새천년 체조를 하게 되었다. 영상을 보며 체조를 하는데 갑자기 영상이 꺼지고, 음악만 나오는 상황에 모두 렉 걸린 컴퓨터 화면처럼 우왕좌왕 헤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평소처럼 영상을 보지 않고 아이들과 체조를 하는데, 체조 순서를 외우고 있던 나는 “어깨돌리기~” 하며 평소 하던 대로 아이들 앞에서 체조를 하고 있었다. 순간 멈춰있던 체육교사에게 나의 행동은 교사처럼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이 사실을 우리 담임 선생님한테서 전해 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영상이 끊겨 순서를 헷갈릴 때 앞에서 하고 있으면 힌트를 얻어 얼른 구령을 하며 아이들을 평소대로 지도하면 될 일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같은 교사가 그리했으면 “언제 다 외우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잘 넘어갔어요.” 이렇게 웃으면서 넘길 일이다. 이게 뭐라고 “선생님, 아까 체조 때 하신 것은 앞으로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다. “선생님, 나는 늘 그렇게 하잖아요. 하던 대로 우리 반 아이들이랑 체조 한 거예요. 평소대로 한 건데요?” 했더니, “앞으론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한다. 너무 좋은 우리 담임선생님마저도 이리 말하는데, 기가 턱, 막혀서 너무 답답했다. 그런데, 더 기암할 일은 우리 특수교육실무사 실에서 이 상황을 얘기하고 의견을 묻는데 7명 모두,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그랬다. “과하게 뭘 하지 마!! 열정적으로 하지 마! 그렇게 하라잖아. 과하게 하는 걸 그들이 원치 않아!” 즉, 그들이 원하기에 보조라는 이름 안에 우리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법에 올린 문건을 만든 사람들이 보조원이란 통칭(명칭이 아니다. 각 치료사들과 함께 보조인력들을 통칭하여 보조원이라 기록한 것이다)과 업무내용을 법에 올리면서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직명도 보조원이라 법에 명시하고, 전국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1:1 맞춤교육계획을 세우고 교수활동을 하는 것은 교사의 업무이니, 보조원은 그저 특수교사의 지시와 관리에 의해 움직이는 감히!! 지도할 생각은 못하게, 그래서 특수교사와 부딪힐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갑자기 일제 강점기의 우리의 얼(정신의 중심)마저 바꿔 지배하려 했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생각났다. 내 생각이 너무 과한가? 아니다!! 생각마저 지배하려 했던 일본의 관리방식과 보조원이란 이름 안에 살아있는!! 사람을 생각 없는 죽은 사람으로 가둬버린 ‘그들’의 관리방식이 뭐가 다른가? 마음을 주고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돌보는 행동 자체를 ‘선을 넘는 행동,’‘지도’로 규정하여 ‘도발’로 보도록 만들어 버린 것!! 교사와 특수교육지도사(나는 이 직명이 옳다고 여긴다)가 서로 돕는 동료의 관계인데, 특수교육보조교사로 시작한 명칭을 보조원으로 만들어버리고, 특수교사의 지시·관리를 받는 자로 법에 명시하여 특수교사와 보조원을 갑과 을의 관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게, 그것도 학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집으로 보내는 학교 안내장에 ‘엄마는 가장 좋은 선생님입니다’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교육과 바른 생활습관을 학부모님께서!! 집에서부터!! 잘 지도해주시란 내용으로 보내진다. 나 또한, ‘엄마처럼 내 아이다 생각하고 장애학생을 잘 돌봐주세요’ 부탁받고 채용되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는 것처럼 아니? 내 아이보다 더 최선을 다해 읽어주고 놀아주는데 이런 것은 ‘지도’이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밥 먹이고 화장실 뒤처리해 주고 그림자처럼 보조만 해달라는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교사선생님이 하면 지도가 되고 이옥랑 실무사 선생님이 읽어주면 지원이 되는, 사람을 급을 나눠 가르치는 이런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란 사람이 학교 안과 밖에서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닌데도,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지도는 허용이 안 되는 그저!! 보조원이어야 하는 것이다. 특수교육실무사는 관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존중 받아 마땅한, 특수교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동료다. 그 안에 사람은 없고 그저, 관리하기 편하도록 만든 이름과 법!! 의도가 그러하기에 너무 나쁜 법이고 너무 나쁜 이름이다. 이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 “보조선생님~ 여기 와서 이것 좀 도와주세요”
학교 내 비정규직들은 직종이 80여종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업무 겹침이 거의 없어, 업무가 곧 직명이 되고 직명이 곧 호칭이 되어 불리웠다.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는 일들이 많아, 선생님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적으니 교수활동 외 업무들을 종류별로 나눠 계약직을 고용하여 맡겼기 때문일 것이다. 즉,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학교 안에 없었으면 정규 선생님들의 업무가 얼마나 방대했으며 그 업무처리 하느라 학생들에게 할애해야 할 시간들이 얼마나 침범당했을 것인가? 지금도 정규교사 선생님들의 업무가 많아서 수업 중에도 팝업이 뜨고, 간간이 불려나간다. 즉, 학교 내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정규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을 나눠 준 고마운 동료인 것이다. 그런데도 급이 낮은 비정규직으로 생각하고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며 조롱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하니 참!! 참담하다. 그래도, 업무가 직명이 되고 호칭으로 불려지는 것은 바로 잡았다.
“저기~ 보조쌤, 이것 좀 도와주세요” “스강쌤 피구해도 돼요?” “상담쌤, 상담실에서 놀아도 돼요?” “여사님, 국물 좀 더 주세요!” 이런 상황이 공문이 시행되면서 바로 잡아졌다. 학교 내 모든 교직원은 선생님으로 부르고 호명할 때는 이름과 선생님을 붙여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호칭의 문제를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공문으로 시행해 바로잡은 것도 너무 황당하다. 학교가 얼마나 급을 나누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 사람에게 맞나? 아닌가? 따지고 차별하였으면 민원이 들어와서 공문으로 시행이 되었겠나? 학교가 정말 학교다우려면 비정규직의 처우를 법대로!! 처리해야 진정, 학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처럼 모든 교직원들에게 바르게 응대하고, 학생들에게 그리하도록 가르쳐야 그것이 진정한 학교인 것이다. 가르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 이중적인 학교에서 이중적인 생활을 배워 나간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바르게 이끌리 만무하다. 가르치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아야, 배운 것을 행하며 우리나라를 바르게 바꿀 것이다. 역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나빠지는 이유는 교육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육계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 68만원 받아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편도 50여분 거리를 다니면서도 출근이 즐거웠다. 지각할 것 같으면 미리 택시를 탔다. 택시비로 얼마를 썼는지 계산도 안 해봤다. 9시 전에 출근해서 5시까지 근무하는데 쉼 없이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아주며 월급날 받는 돈은... 차 떼고 포 떼고, 68만원 정도!!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것이 더 나았을 그때 그 시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행복하고 보람찼으니 됐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 받는 급여와 사람을 함께 묶어서 평가하고 정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2006년 그때나 15년이 지난 2021년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더 견고해지고 있다.
 
# 자네가 거기 왜 앉나?
학교를 옮겨 더 열심히 특수교사선생님과 학생들을 보조하다 보니, 다음 해에 그 학교에 다시 채용이 되었었다. 새로 오신 교사 선생님 7명과 특수교육 보조인력 1명. 그래서 환영식 테이블 여덟 자리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행정실에서도 환영식이니까 그곳에 앉으래서 앉았는데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자네가 거기 왜 앉나?” 하며 쫓아내셨다. 너무 황망했다. “네?” 하며 교감선생님을 바라봤는데 “저리 가 앉아요.” 하더니 기존 교직원 옆자리로 가라고 하셨다. 정규 교직원과 비정규직은 한 테이블에서 밥도 먹지 못하고 환영도 못 받는 건가? 이건 정말 따라올 것이 없다. 쓰린 기억 중 가장 센 기억이다. 13년 전 일이고 요즘은 이런 일들은 없다. 아마도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을 하면서 우리 선생님들이 현장을 바꾸신 결과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교과서 밖에서 참교육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참 선생님들은 바로!!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선생님들이신 것 같다.
 
# 그대 없이는 못 살아~
환영식은 너무 아팠지만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엄마보다 연세가 많으신 특수교사 선생님께서 “우리 이옥랑 선생님은 버튼만 누르면 만들어내는 자판기 같아.” “그대 없이는 못 살아~”노래를 부르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안팎으로 학생만 생각하시며 어떻게 하면 원리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늘 고민하시던 선생님이셔서 아이디어를 주실 때마다 만들어야 할 교구가 늘어났고, 선생님이 O.K 할 때까지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일들은 끝나지 않고 계속 쌓여갔다. 5시 퇴근을 못하고 6시 넘어서 퇴근하면서 혼자 울기도 했다. 기쁘게 자원해서 열심히 했는데 눈물 나게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너무 필요한 사람, 그래서 늘 바쁜 사람. 기쁘고 기분은 좋은데 몸이 힘들어 눈물 났던 2년이었다. 지금은 만든 교구보다 사는 것이 더 예쁘고 안전하다며 구입하여 쓰고 있다. 요즘 교구들이 정말 잘 나온다. 참 다행이다.
 
# 17개 시도교육청 중 전남만 무기계약전환 배제
교육부에서 인건비를 받는 11개 직종은 당연히 무기계약으로 넘어갔다는데, 유일하게 전남만 특수교육실무사 직종을 배제시켰다. 다른 시,도는 당연 무기계약직이라는데 전남만 아니라고 해서 생후 8개월 된 아이를 안고 전남 도교육청 칼파람에 맞서 피켓을 들었다. 최종 사용자인 전남 도교육청마저도 우리를 차별하여 버리려 한 것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데 교육감 선생님의 차량이 지나다 멈춰섰다. 그리고는 내 피켓의 문구를 보고 정문을 지키던 주무관님께 뭐라뭐라 말을 건네고 가셨다. 그 주무관님이 내게 와서 전해 주셨는데 “저거 확인해 봐.”라고 하셨단다. 말이 안 된다. 수장이 몰랐을 리 없다. 어쨌거나 다행히, 무기계약 전환 공문이 내려오긴 했다. 선생님들과 돌아가며 무안 칼바람을 맞았던 기억,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욕지기가 나오는 기억이다.
 
# 시간제 일자리 특수부터
하다, 하다 정부마저도 우리를 버리려 했다. 장애영역 지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치부하였고, 학생들에 대한 정보나 현장에 대한 파악이 없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밀어붙이려 했을 것이다. 교육부가 나서서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과 특수교육지도사들을 버리려 한 것이다. 2015년 1월 '시간제일자리 특수부터'라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에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고 개인적으로는 1월 6일 국민신문고에 투고를 하였다. 전국 특수분과 분과장 이하 조합원들이 신문고에 함께 글을 올리는 등 온 힘을 다해 막으려 애썼고, 1월 15일엔 학비노조 간부들과 교육부가 면담을 했다. 정말, 하나가 되어 대처하고 막았기에, 사람도 ,학생도 없는 숫자만을 위한 충성정책! 기업스런 일자리 정책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되었다.
 
벌써 6년이 지났다. 우리 사용자도 우리 정부도 버리려 한 일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백만돌이 같이 꺼지지 않은 나의 텐션은 그래야 설명이 된다. 어떤 학생도, 어떤 상황도 이제 감히!! 예견이 되고 파악이 되는 15년차다!! 칙칙하고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밝고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는 긍정과 희망의 아이콘!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 일을 조용히 해결하여 주는 해결사! 불편한 것을 편하게 바꿔주는 맥가이버! 터덕대고 설은 관계도 부드럽고 친하게 만들어 주는 평화전도사!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선생님들이 생겨난, 나름, 인기쟁이! 내가 이리 쓰니 부끄럽지만, 자평이 아니라 들려오는 소문이... 소문이~그렇다는 얘기다 ^^;;;
길이 없었기에 전국학비노조와 길을 만들며 걸어왔다. 이제는 체험했기에,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또한, 함께 걷는 이들이 더 많아졌기에 더 열심히 가 보려 한다. 포장 공사까지 마친 길을 걸어오는 후배들이.. 원래 있던 길인 줄 알고 선배들을 대접해주지 않더라도 그들과 가 보련다. 이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어제는 보람찼고 오늘도 행복했으니 내일은 반드시 더! 행복할 것이다.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 ♬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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