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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교비정규직작품공모전 장려상] 김서현 / 17세 소녀의 과거는 꿈, 미래는 희망

  • 학비노조
  • 1694
  • 2021-11-30 12:26:29

17세 소녀의 과거는 꿈, 미래는 희망
 


구 육성회 김서현
 
책가방을 메고 잘 다려진 교복에 옹기종기 친구들과 깔깔, 낄낄 거리며 학교등교 할 나이인 17세 소녀가 사회초년생이 되는 날. 수업받으러가는 학교가 아닌 생애 첫 직장을 나가는 날이다. 행여라도 친구들 눈에 띌까봐 땅바닥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 학교에 도착 하자마자 선생님들 커피 심부름, 재털이 비우기, 숙직실 청소하기, 직원들 책상닦기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나의 이름은 첫날부터 “김양”이 되었다.“김양”2장복사해오소, “김양” 손님오신다네 차 석잔, 학교에 행사가 있으니 다과 준비하소.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이게 직장인가? 어린마음에 첫날부터 마음을 많이 다친날이였던걸로 기억한다.하루는 선생님과 서무과장님이(행정실장 전 직책)크게 다투신날이 있었다. 행정실에 재떨이가 날아다녀 맞았던 기억 안경을 쓴 나는 지금도 아찔한 기억이다.

친목회가 있는 날이면 나는 그야말로 행정실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었고,심지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직장내 “성희롱” 발언은 분위기 전환이라 하여 많이 들어야만 했었고, 주 업무시간에 왜 그리 사무실에서 담배는 아무 거리낌없이 피우는지 난 그저 잔 심부름 전담이 되어버렸다. 애경사가 많은 계절이면 워드로 주소작업하여 하루 종일 오리고, 풀칠하여 봉투붙이고, 우체국까지 먼 길을 걸어서 우편물 발송하고, 교장선생님 발령시는 관사(사택)청소며, 학교 화장실 변기청소, 하물며 여름에는 운동장의 잡초를 호미로 메는일이 많아졌다. 방학때는 급식이 없어 직원들 밥까지 해야했고, 행정실장님 교장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아무말없이 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시키는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연시 하게 생각하였지만 10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차고, 점점 감정이 없는 감정노동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배워야만 했다. 배우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업무를 줄거라 생각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어 방통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하루에 잠은 4시간으로 열심히 학업과 공무원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그치만 나의 몸은 건강이 허락지가 않아 늘 시험 당일만 되면 스트레스, 과로로 인하여 여러차례 입원과 퇴원을 하여 낙방을 하였다. 20살이 되던 대학 입학후 드디어 나에게 주어진 첫 업무 “세입”업무 급식비와 운영지원비를 지원없이 학부모 부담으로 받던 시절이고, 단기적인 외환부족으로 IMF사태가 생긴 터라 교육비지원(국민기초수급자)가정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미납금은 빈번하였고, 수납을 위하여 퇴근 후 가정으로 찾아가면 힘든 가정사를 들으며 남일 같지않아 할머니, 어머니를 서로 부등켜 안고 많이도 울었던 일, 차마 미납금을 납부해달라는 말도 못했던 기억, 지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지원,감면제도는 정말 훌륭한 결정이라 생각하여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2001년 학교회계가 도입되면서 인건비 보조를 받는 학교 육성회직원들은“해고”가 되어 막막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고, 학교업무를 배우는게 너무도 좋았기에 전라도를 떠나 경기도로 옮겨 더더욱 일에 매진하였다.

초등학교 행정실로 갔더니 갑자기 급식업무를 전부다 넘겨주셨다. 식단, 발주는 영양사님의 주 업무이면서 행정실에선 급식에 관한 모든 업무를 지시하는거에 싫은 내색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교육행정인 사이트로 접속하여 하나씩 배워가며 업무를 터득할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11개월 근무중 고등학교 사립학교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신설학교에 투입이 되어 공립과 다른 업무를 하다보니 새벽 출근, 자정이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어느날 기계같이 움직이는 모습에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나 자신도 주체를 못할 정도로 너무도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고향이 그리워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늦은시간 일기를 쓰듯 교육행정 전문사이트 자유게시판에 구구절절 적어내려가며 힘든상황들을 적으며 마음을 달래다가 다시 글을 삭제하기는 반복했던 나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의 학교 차석선생님께서 그 글을 보시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분도 새벽에 업무를 하다가 우연히 글을 보고 읽어 내려가는데 다음장으로 넘기면 삭제되기를 반복하는걸 보셨다며 나의 타지생활의 힘든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지금의 학교 차석선생님께 걸려온 전화 한 통의 목소리 전라도의 말투에 얼마나 울었는지— 곧 지금의 학교가 (구)육성회직을 뽑을 것 같다며 생각이 있으면 원서접수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의에 무조건 원서접수와 면접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학교직원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속에서 근무하던중 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 하였을때 기능직 10등급 3호로 급여를 받고 있었으나, 예산이 부족하다며 다음해인 3월에 급여를 지출한 후 갑자기 서명을 하라고 지시하시는 거에 당황스러웠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이 자리 욕심내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시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강요하시며 서명을 요구하셨다. 어디에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비정규직인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사용자분들은 학교 비정규직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협박을 하기 시작하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가는것이지 절이 옮겨갈수는 없다”이 자리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학교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며 술을 강요하였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상사를 무시한다며 다음날 더 큰 보복이 따라오기 일쑤였다. 회식중 도우미 역할도 강요하여 거절하면 안되는 정도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직위를 이용한 “갑질”을 하고 계셨다. 하물며 학교의 빈땅에 농산물을 지어드신다며 농산물 포트에 양배추, 김장용무씨앗, 김장배추씨앗을 넣어 출근시 밖으로 내어 물을 주고, 퇴근시 안으로 들여놓아 묘목을 가꾸어 땅에 심어 생산할 때까지 물을 주었다. 배추 뽑은다며 바쁘지 않으면 나와서 도와라, 커피몇잔 타와라, 직원으로 보기보다는 무보수 일꾼으로, 사적으로 개인적인 업무를 지시하시는 그 분은 존재이유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업무는 어떻게는 처리를 할 수 있었으나, 사람에게 시달리는 업무는 정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져만 갔다. 지금의 근무여건이 좋아진 건 2010년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TV, 언론에서 방송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꼭 내편이 생긴 것 같은 든든한 빽그라운드? 하지만 학교측에서는 가입조차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더욱이 근무평정 점수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난 사용자가 무서워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리 새 가슴이였고, 겁이 많았는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사용자 측에서는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고 파업을 참여한 직원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눈치를 주며 노동조합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조합원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작하였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최초로 가입하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났다.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뿌듯함 내 직종의 부당하게 내몰린 행정사무원(최초임용당시:호봉제에서-연봉제로 변경)연봉제 선생님들의 호봉제가 우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뜻을 같이할 선생님을 찾으면서 “연봉제”를 “호봉제 단일화”의 과제를 놓고 교섭을 풀어가면서 연봉제 선생님들과 즐겁게 피켓시위를 참여하여,드디어 2018년 3월 10년간의 서러운 연봉제를 청산하고 호봉제 단일화를 이끌어 내었으나, 그럼에도 100%가 아닌 총경력의 30% 9급에6호봉,

사람들은 말합니다.
공무원과 똑같은 호봉이니 급여가 꽤 많이 올랐을거라고 그러나, 2012~3년부터 행정사무원티오를 일반직 정원티오에 포함하여 일반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게 되었고, 저희도 회계감사는 똑같이 받고있는 실정입니다. 학교가 적어 일반직 차석샘이 발령나면 신규9급 분들이오셔서 늘 옆에서 신규업무를 가르치는 담당자가 되다보니 제 업무는 늘 뒤로 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업무 하나하나에도 책임감을 가지며 열심히 행정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30년 가까이 일하고 9년 일한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그것도 9호봉의 100%가 아닌 이상한 보수체계,,, 지금 행정사무원이 요구하는 사항은 단 한가지 경력 100%입니다. 하지만 “수용불가”라는 문구를 볼때마다 지난 28년간 일한 나 자신에게 미안해 지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욕심 부릴꺼면 당당하게 공무원 시험보고 들어오라고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왜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았겠냐? 먼 과거 초등학교 근무하셨던 육성회직원분들은 자동으로 기능직 사무원으로 이직을 하고, 이직후 사무운용직을 거친분들은 교육행정의 시험을 응시할 자격이 주어져 전직하신분들이 많습니다. 이렇듯 저희도 똑같이 시험볼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공무원을 시켜달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저 일한만큼의 경력과 호봉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일까요? 저희 행정사무원의 요구사항을 잘 살펴봐주시고 “수용불가”가 아닌 한번이라도 “검토”를 지나“수용”이라는 문구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담아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학비노조 간부님들 저희 조합원을 위하여 굳은일도 서슴치 않고 앞장서 주시는 정성에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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