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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교비정규직작품공모전 장려상] 최낙숙 / 노조 활동 10년

  • 학비노조
  • 929
  • 2021-11-30 13:20:59

노조 활동 10년

 
조리실무사 최낙숙
 

1. 학교생활 - 노동자의 삶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저는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 취직했습니다.
제대로 된 근로 계약서 조차 읽어 볼 겨를도 없이 앞치마부터 둘렀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간 자리가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하며 반나절 만에 나간 빈자리였었습니다. 그렇게 고된 노동자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식들이 눈에 밟혀 지금의 저는 힘들지만 그저 묵묵히 버티는 것만이 길이라 생각했었던 어두운 날 들이였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는 1650인분의 카레를 만들던 날 입니다.
제대로 된 지시사항 없이 레시피 하나만으로 가마솥 2개에 카레를 끓였지만, 저에게 돌아온 건 카레가 묽으니 책임지라는 질책뿐 이였습니다.
처음 당해본 상황에 저는 죽을죄를 진 냥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 당시 이 말에 부당하다는 대꾸조차 해주는 동료도 없어서, 작업복도 벗지 못한 채 학교 근처 마트로 달려가 울면서 사비로 카레 가루를 사서 다시 끓였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가족에겐 카레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급식실에서 온갖 설움을 견디고 악바리같이 버텨온 세월동안 제게 남은 건 망가진 허리와 붓기때문에 쥐어지지 않는 손 그리고 산재판정뿐입니다.
이런 서럽고 힘든 기억은 나혼자 만이 겪고있는 악몽이 아닐것입니다.
식판 수백 개를 나르는 카트 바퀴가 고장이 나도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사람의 힘으로 끌게 하고, 무거운 밥솥을 혼자서 옮기고 쭈그려 앉아 바닥을 수세미로 닦아서 허리가 상하고, 온 몸이 골병이 들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급식실 노동자의 삶 입니다.
이런 현실속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이라면서 지금의 김진주 지부장이 학교로 방문을 왔습니다.
 
2. 노동조합 - 새로운 변화
 
2011.7.9일은 부산학비노조가 창립을 한 날입니다.
이날 저에게 노동조합의 창립선언문 낭독을 부탁하셨고, 그 결과 이필선 부지부장님과 같이 낭독을 하게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학비노조를 시작 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시작 하면서 노동법을 처음으로 알게되었습니다.
노동법을 배움으로써 학교에서 무지하게 일을 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몸으로 때워야 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관두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임금은 대략 3월 월급은 83만원 2월 월급은 22만원 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임금이 방학때는 무노동 무임금 이라고 말했고 지금도 방학때 저희의 임금은 없습니다. 이런 악조건의 근로환경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우리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임금도 인상했습니다. 누구하나 차별받는 일 없이 노동조합이 힘을 발휘해 주었습니다.
 
첫 시작은 노동조합단결투쟁으로써 명절수당 연 10만원을 쟁취한 것입니다.
이 명절수당을 쟁취하기 위해서 교육청 경비실 앞에 비닐로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비가 오니 천막이 무너지기도 하고, 그 옆으로 쥐나 벌레가 기어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고난을 참으며 명절수당이라는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교육청과 싸웠습니다. 그 결과 명절 때마다 식용유 1세트뿐 이였던 우리에게 처음으로 명절수당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 투쟁을 시작으로 위험수당, 정기상여금, 급식비, 근속수당, 맞춤형 복지비 등 을 쟁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사항은 많습니다. 더 나은 우리의 근무환경을 위해서 지금도 여전히 교육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급식실은 1명이 수행해야할 업무가 과도하게 많기 때문에 배치기준 하향 촉구 및 노동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 부산은 학교마다 급식실 환경 조건이 다릅니다.
어떤 학교는 식당과 교실배식 혼용으로 시행하고 있고, 어떤 학교는 식당이 여러군데로 나뉘어져 있고, 어떤 학교는 공동배식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인데도 불구하고 전보를 강행하여 현장에 혼란만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으로 단결투쟁하여 현재 보다 더 나은 환경개선을 시행해야합니다.
 
노동 조합을 만나고 노조 활동을 하게 되면서 노조 전임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전임 당시 옆에서 컨트롤 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 뒤에 혼자서 학교 방문을 하게 되니 참 두려움도 많았고 떨리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조합원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보면서 예전에 힘들었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법을 잘 몰라서 학교가 시키면 다 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배운 것을 하나라도 현장조합원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하루에 서너군데를 다니다 보니 무릎 한쪽이 고장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법이나 자료를 알려주면 현장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아픔도 잊고 현장 방문을 더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조합원들이 노동법을 알게 되고 그 결과 학교와 맞설 수 있게 되면서 더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런 가운데 18년도에 저에게 지부장을 하라고 말씀 해주셨을 때 저 같은 사람이 뭔 지부장이냐며, 지부장감도 아닌데라고 거부했었지만, 그래도 사무처 동지들과 조합원들을 믿고 지부장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또 한번 앞섰습니다. 하지만 여러 노동조합을 방문하고 타 노동조합 간부님들을 만나보면서 오히려 제가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부장, 그리고 간부로서 해야 할 일을 습득하고 노력하며, 현장을 더 열심히 방문해서 조합원을 만나고 알려주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임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조금 뒷전으로 미뤄졌던 것 같습니다. 지부장 시절에 시어머니와 모친을 만나지 못할 곳으로 보내드린 것이 조금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래도 우리 4천 조합원들이 있기에 본분을 잊지 않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지부장으로서 미약하지만 열심히 노력했었고 조합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더 할 수 있습니다.
 
3. 후보출마 - 새로운 도전
 
50세에 노동조합을 만나고 57세에 지부장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민중당 부산 비례후보에 출마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 전역 노동조합을 방문하면서 우리 학비를 알리고 비정규직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여러 노동조합을 마주치게 되면서 나보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노동조합을 설립해서 학비처럼 되고 싶다는 노동조합도 만났습니다. 당선은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민중당을 통해서 더 많은 노동조합과 당원들을 만나면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후보 활동을 통해 알게 된 현실은 부자들만이 사는 세상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부속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그 사실이 참 서글퍼서 더 열심히 바꿔나가야겠다는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4. 현장결심 - 남은 도전
 
퇴직이 2년 남은 지금 저는 노동조합전임 당시 조합원들에게 노동법과 근로조건을 알려드렸으나 아직도 현장은 실현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배웠던 것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서 행정실장과 직접 맞서기도 하였습니다. 사무처에서 알려주는 대로 실천 할 수 있으면 현장은 얼마든지 환경개선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단결투쟁하여 우리 학비노동조합이 하루 빨리 정규직화 되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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