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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공모전 입상작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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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공모전 입상작

2021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 안내 사진
중요 2021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 안내 [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 안내 ]     올해 7월에서 8월에 걸쳐 진행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라는 주제로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이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겪는 차별과 서러움, 여성노동자로서 겪는 일과 가정, 돌봄 등의 어려움, 나아가 이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수기와 시, 그림, 사진 등을 통해 잘 전달해주셨습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에 응모된 총 76건의 작품 중 22분이 입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은 수기 부문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님, 시 부문에 이상임 시인님, 최종 심사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박미향 위원장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앞으로 열릴 공모전에도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노조에서도 지금 모인 작품들이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더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부 이름 직종 부문 대상 경기 유미향 돌봄전담사 수기 최우수 경기 권윤숙 조리실무사 수기 전남 이옥랑 특수교육실무사 수기 우수 전남 김현희 돌봄전담사 수기 인천 안성미 조리실무사 수기 경남 정수진 조리실무사 수기 경기 김은희 돌봄전담사 시 장려 울산 곽영미 조리실무사 수기 경기 권점늠 미화 수기 전남 김서현 행정실무사 수기 서울 김숙희 조리실무사 수기 광주 노미춘 조리실무사 수기 부산 노정숙 조리실무사 수기 인천 방애경 유치원교육실무사 수기 경북 윤정희 조리사 수기 대구 이준길 운동부지도자 수기 경남 임하정 영어회화전문강사 수기 부산 최낙숙 조리실무사 수기 경기 김은주 특수교육지도사 시 서울 민현순 교무행정지원사 시 부산 김수진 방과후전담사 그림 경기 박양미 조리실무사 그림                  < 17차 정기중앙위원회에서 진행된 시상식 사진>       심사평     심사의 말씀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글쓰기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즉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남이 읽어주기를 원하는 글이라면 읽는 이에게 뜻이 잘 전달되도록 글을 매만지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잘 쓰는 글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겠지만, 저는 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건과 상황과 사람에 대해 남의 위치와 시선이 아닌 나의 위치와 시선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과 질문을 잘 풀어낸 글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글”이며, 그런 글은 혹 아직 잘 매만져지지 않았거나 문법과 맞춤법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더없이 매혹적인 글이라 생각합니다.   노동현장 뿐 아니라 그와 직결된 여성 개인과 가족 및 사회생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저 뿐 아니라 이 글들을 읽는 모든 분들이 많은 공부와 성찰과 질문들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된 후 다시 나온 사회에서 여성들이 부딪치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일 가정 양립의 어려움, 급식현장의 바쁘고 고된 노동 내용과 위험과 근골격 질환을 비롯한 갖은 질병과 사고들, 학교와 유치원 돌봄 현장 노동의 세세한 내용들, 미화원 노동자에 대한 체력검사 과정에서 겪은 모욕감, 비혼과 이혼과 사별로 한 가정의 생계부양자는 물론 부모 돌봄까지 도맡게 되는 여성의 생애, 남성 노동자가 학교 복싱 교육자로서 하는 제언, 급식 조리사에서 시작해 진보정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경험 등, 제게는 모든 글들이 중요한 공부거리였습니다. 심사위원 제안을 받았을 때 학교비정규직의 다양한 현장 노동자들의 말과 느낌과 노동 내용 및 노동조합과 개인의 성장과정을 배우게 되리라 기대했던 저로서는, 글을 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고민 속에 “대상”으로 선정한 유미향 선생님의 글은, 돌봄 전담사로 일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겪은 많은 경험과 느낌과 고민뿐 아니라 그에 관한 세세한 기록들,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들, 답을 찾고자 생각을 넓혀주는 노동 관련 책을 찾아 읽고 그 배움을 내 현장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 나의 노동현장을 넘어 타인의 노동과 다른 노동들에 대한 공부를 통해 “노동”과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넓고 깊게 이해해 나가는 탐구 과정, 자기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질문들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어 좋았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의 보람과 어려움과 더불어 노조 활동 안팎의 갈등과 섭섭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느낌과 말로 잘 드러내 주셨습니다.   17세에 교무실 “김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심부름 노동을 시작해, 28년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호칭과 직책과 노동 내용이 변화된 과정들에 대한 김서현 선생님의 글도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학교 안 사람들의 식사 및 그 준비와 마무리를 오롯이 도맡지만 자신의 식사 시간과 "밥값"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억울함에서 출발한 투쟁들, “봉사정신”으로 시작한 감정노동이지만 끊임없이 봉사가 강요되는 노동 현장에서 돌봄 노동자로서의 분노와 자각, "보조 교사"나 "교육실무원"이라는 모호한 호칭에서 비롯한 노동 범주의 애매함과 갖은 치다꺼리 노동들, "보조"라는 단어에 갇힌 차별과 모멸감, 성별로 인한 젠더 차별과 함께 남성 상급자의 성희롱까지,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인식으로 노동조합을 찾아 활동하고 이를 통해 얻은 자기 정체성 확립과 노동현장의 변화, 노동조합의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한편 장차 돌봄 노동자로서 생각과 삶을 확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부분의 글에서 보이는 한계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 나의 관점과 느낌이 가족중심주의와 폐쇄적 모성담론, 국가중심주의, 성과주의 등에 갇히지 않았는지 더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자식 돌보듯이......”라는 표현 속에는, 여성을 가정과 모성 안에 묶어두려는 자본과 국가가 만든 족쇄에 여성 스스로 제 발을 채우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는 책임감이지 소위 “모성”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다양한 여성주의 글과 책들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나아가 노동현장 및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넘어, 자본과 국가와 여성노동의 관계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더 이어졌으면 합니다. 자본과 국가는 여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하는 모든 노동을 “사랑”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무임금과 저임금으로 묶어두는 착취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고, 최근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 불평등과 착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돌봄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 및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말로만 언급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과 처우의 대전환과 투쟁을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인 여러분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어떤 정책전문가나 연구자들의 이론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글을 주신 모든 분들이 계속 글을 쓰시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고 나와 우리의 현재를 확인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가장 쓸모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글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학교비정규직 현장 모든 노동자들의 수고와 분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 사 평   이 상 임 / 시인     올해 작품 공모전의 주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당하는 차별, 서러움, 고용불안 등의 문제와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일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시를 통해서 생생한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시를 써낸 분들 모두 주제에 잘 부합된 내용으로 자신의 일자리에서 겪게 된 고충들을 섬세하고 진실하게 표현해 주었다. 그 섬세함과 진실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의 화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에 대해 쉽게 전이된다.   한 작품, 한 작품에 모두 애정이 간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의 쓰라림, 고통, 그럼에도 견뎌내야만 하는 자신의 인생 앞에서 조금씩 전진하며 그 희망의 숲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의 행간마다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해도 부축해 주는 이 하나 없는 비정규직의 현장.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일을 끝내고 햇빛 하나 없는 의자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는 비정규직의 삶. 더 이상 허망할 수 없다.(류양희) 새들도, 풀꽃들도 자리가 있고 하루를 시작하는 해도 자리가 있는데 공무직은 자리가 없다. 투명한 그림자로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뿐이다.(민현순)   듬성듬성 파뿌리 보일 때 만난 친구, 해고된 비정규직인 친구의 방패가 되어 도와 준 내 친구, 시들어버린 꽃처럼 살던 내게 햇빛이 되어준 친구, 그 친구는 다름 아닌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김은주) 남들은 모두 즐겁게 듣는 ‘토요일은 밤이 좋아’를 토요일엔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끄고 우는 딸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엄마. 엄마는 토요일도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늦게 오는 엄마를 홀로 기다리는 토요일. 그 긴 시간이 딸은 무섭다.(김숙희)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늘 제자리. 베이고 데이고 살이 뜯기는 상처와 고통들. 자존감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처우와 사회의 시선. 멀고도 험한 그 길을 견디게 하는 힘은 오직 투쟁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생존의 이유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겨 앉는 일이다.(노현정) 떨고 있는 미래, 서러운 불안을 안고 우리 함께 길 위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신윤선) 젊음을 등에 업고 열심히 지지고 볶았더니 이제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고치고 또 고치고 고쳐서 다시 쓰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지금보다 나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 희망으로 또 지지고 볶는다.(김준미)   산다는 것은 때로 풀잎의 잠을 풋풋하게 흔들어 깨우는 일, 어제보다 더 푸른 꿈의 발자국이 봄처럼 찬란한 영광의 함성으로 비정규직의 벽이 무너질 때 우주가 쿵, 하고 흔들릴 것입니다.(김은희) 온 종일 음식을 조리한 열 손가락은 밤이면 아려오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주는 이들의 행복을 노래하고 밤이면 꿈속에서 희망을 조리한다.(김영애)   이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만큼 고통스러운 일인지 작품마다 내면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중에서 쉽지 않게 세 작품을 가려냈다.   산다는 것은 (김은희)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항의하러 교육부 앞마당에 모여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봄날에 진달래가 부풀어 오른다.’던가, ‘꽃잎 같은 숨소리를 내며 꿈이 커가는 아이들처럼 우리들의 웃음도 또르르르 구른다,’고 빗댄 표현들이 이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는 무거운 주제를 유연한 비유와 일상의 가벼움을 통해 서정적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언제나 내편 (김은주)   ‘시들어버린 꽃처럼 살던 내게 햇빛을 비춰 세상의 눈 밝혀준 늦게 만난 내 친구’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다. ‘학비노조’를 이렇듯 다정다감한 친구로 의인화하여 표현함으로써 ‘노조’를 삶 깊숙이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공무직의 자리 (민현순)   이 시를 읽으면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쓸쓸함이 감돈다. 새들이 살아가는 허공에서, 풀꽃들이 살아가는 땅 위에서, 지혜와 가르침이 매일 피어나는 교육현장에서 화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자리를 살펴본다. 그렇게 꼼꼼하게 살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화자가 처한 공무직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끝내 그 자리는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함이 돋보이는 시다.  
  • 학비노조
  • 2,911
  • 2021.11.30
[2021학교비정규직공모전 대상] 유미향 / 여섯개의 오렌지 돌리기   여섯개의 오렌지 돌리기   초등돌봄전담사 유미향     <새벽의 약속>에 나오는 로맹은 여자친구 발랑틴에게 뽀뽀를 받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과 3알을 돌리기 시작해 ‘학교에서, 복도에서, 친구들 앞에서’ 열심히 연습한 결과 오렌지 다섯 알에서 여섯 알을 돌릴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오렌지를 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위해 매일 매일 돌리는 오렌지가 있다. 엄마, 아내, 책, 운동, 글쓰기, 돌봄 전담사라는 오렌지를 돌리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중 돌봄 전담사라는 오렌지가 가장 컸다. 이건 내 직업이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돌보고 있는 돌봄 아이들은 맞벌이, 다문화, 한 부모, 다자녀로 구성되어 있고, 누가 봐도 사회적 약자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명목하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이 아이들이 ‘고위공직자나 재벌, 국회의원 등의 자녀라면?’ 이렇게 쉽게 학교 밖으로 내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안전한 학교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고, 공적 돌봄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권리가 있다. 나는 현재 나와 우리 돌봄 아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나의 싸움은 코로나 19와 함께 시작되었다. 코로나 19는 순식간에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2020년 1월 말에 시작된 코로나 19는 3월이 되어도 끝날 줄 몰랐고,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3월에 학교는 개학하지 못했다. 겨울 방학에도 쉬지 않고 운영되던 초등 돌봄교실은 코로나로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정교사들이 재택 근무할 동안 ‘긴급 돌봄’이 시작되었고, 긴급 돌봄의 아이들은 오로지 돌봄 전담사들의 몫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였던 우리 돌봄 전담사들은 ‘긴급 돌봄’을 충실히 수행했다. 책상과 교실 소독은 물론, 발열 체크도 수시로 했고, 손 소독을 강조하고,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는 아이들을 지도했다. 교육청에 출석 인원을 보고하고, 간식과 점심도 챙겼다. 교차 근무로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날에는 이 모든 일과 함께 저녁밥까지 먹이고 퇴근해야 했으니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개학은 계속 뒤로 밀렸다. 반복된 날들은 육체적 ·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고,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왼쪽 목에 불룩한 혹이 생긴 것이다. 너무 놀랐고, 병원에서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했지만, 이상 없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진찰하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 병원으로 옮겼다. 속이 타는듯한 뜨거운 조형제를 넣고 CT를 찍었다. 혹 부위는 크고 하얗게 보였지만 화학적으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원하신다면 혹 속의 물질을 주사기로 빼고, 알코올을 넣어 말려 줄 수는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아니에요. 조금 더 지켜볼게요.” 하며 갑상선 암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다. 긴급 돌봄이 계속되는 동안 몸은 더 피곤해졌고, 정신적 긴장도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내 몸이 이러니 알아주세요.” 할 수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목의 혹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5월에 개학했다. 코로나는 여전히 무서웠지만, 계절은 시간에 맞춰 꽃이 피었고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졌다. 아름다운 봄의 계절이 오고, 봄바람이 불 듯 돌봄 전담사의 고생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긴급 돌봄’으로 고생한 돌봄 전담사들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솥에 삶아 버리듯,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자체 이관이든? 교육부 소속이든? 월급만 받으면 되는 거지. 뭐가 어때?’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고용 승계는 없다.’라는 말은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한번 두들겨 맞은 정신은 빨간불을 깜빡이며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몰랐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노조에 대해 ‘맨날 생떼(?)나 쓰는 사람들’이란 오해와 불신도 있었다. 그래도 믿을 건 학비 노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 또는 교육청 혹은 학교가 내 목을 붙잡고 흔드는 것을 알아챈 후 목이 몹시 아팠고(이때까지도 목에 생긴 혹도 없어지지 않았다), 단칼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발로 노동조합 연수에 찾아가게 되었고, 이후로 2020년 11월 6일 총파업에 참여하기까지 많은 일이 지나갔다. 총파업에 다녀온 후 일기를 썼다.   “생수 40병과 귤 5kg 2박스를 준비하는 담당이라 무거웠다. 신갈 굴다리 밑 시외버스정류장까지 남편이 태워줘서 고마웠다. 10시 30분에 노조원들을 만나 관광버스에 올라타면 되는데, 9시 30분에 도착하여 여유가 있었다. 1시간 동안 시외버스 터미널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김민섭의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이다. 지난번 수지 도서관에서 있었던 저자의 zoom 특강을 듣고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지방 대학에 인문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비정규직의 설움과 불합리에 대한 일들을 써 놓은 책이었는데, 내 이야기 같아서 술술 읽혔다. 이 작가의 zoom 특강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당신 인생에 부조리가 들어왔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스로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작가님은 책을 썼고, 대학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게도 지금 그런 위기가 닥쳤기에 나 스스로 대답을 찾기 위해 노조 연수를 들으러 갔었다.“   10시가 넘어가자 노조원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처음엔 파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노조원분들이 막판에 동참해줘서 버스에 28분이 탔다. 처음 보는 얼굴이 많았지만, 목적이 하나였기에 반가움이 컸고 고마웠다. 교육부 앞에서의 파업은 내게 커다란 힘을 줬다. 전국에서 모인 초등돌봄 전담사들을 보며 '나 하나는 미약하지만, 그 작은 힘을 보태면 큰 힘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 그러나 간간이 비가 내릴 때는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자괴감도 들어 살짝 슬프기도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교육부 파업 참여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씩 했다.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자꾸 뒤로 뺐는데 오늘 파업 집회를 보고 느낀 점이 많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공적 돌봄은 꼭 지켜져야 한다.' 등 다들 공감되는 말씀을 나눠주셔서 좋았다. 그렇게 연대의 힘을 느꼈고, 이렇게 하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긴급 돌봄‘은 끝이 났고 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내 목에 있던 혹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런데, 2020년 11월 총파업 후 나는 생각지도 못한 다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총파업을 마치고 온 우리에게 학교의 높으신 분께서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에 참여한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낙인을 찍은 뒤 우리의 인사를 받지 않고, 모르는 척 지나가셨다. 그렇다고 나도 같이 그분을 투명 인간 취급할 수는 없었기에 받지 않는 인사라도 참 열심히 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말자.’ 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지만,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학비 노조가 내 뒤에서 버티고 있다는 든든함이었다. 내가 무기 계약직이 아니었을 때는 2월 말에 한 번씩 계약만료 통지서를 받았었다.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계약만료 통지서를 받고 나면 팔다리의 힘이 풀렸었다. 팔다리의 힘을 다시 넣어준 것은 학교 비정규직 노조였다. 내가 노조에 힘을 보태고 있지 않을 때도 노동 조합원들은 힘차게 싸워주셨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해 줬고, 파업에도 눈치 보지 않고 참여할 수 있게 해줬고, 투명 인간 취급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모든 힘은 노조를 믿었기에 가능했다. 작은 파도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파도가 덮치듯이 투명 인간 파도를 간신히 넘으니 더 큰 파도가 다가왔다. 버스 안에서 감동과 좋은 말과 연대를 말씀하셨던 노조원들의 협조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11월 총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이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라고 생각한 것일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반응들이 이어졌다. 아직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갈 길이 멀기만 한데, 노조의 그 어떤 부탁이나 협조에도 반응이 없는 침묵 상태가 계속되었다.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젖은 낙엽 같은 노조원들의 무반응은 간부들도 덩달아 지치게 했다. “왜?”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물러나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시달리는 나의 고민을 알게 된 지인은 <송곳>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알려줬다. 나는 최규석의 <송곳>을 읽고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다.   “같이 살자고 총대 멨는데, 지들 생각만 하니까 미치고 환장하겠지? 그거 반장 병이야. 원래 지도 떠들다가 반장만 되면 떠드는 애들이 죄다 바보 같고 한심해 보이는 법이거든.” p207 최규석의 <송곳2> 중에서   그래 그랬다. 반장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다잡는다.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노를 거꾸로 젓지만 않는다면 우린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좀 힘들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자.’라고 다짐했다.   2021년 6월 19일 우린 다시 교육부 앞에 모였다. 2020년 11월 6일 총파업 이후 개선안을 내겠다고 약속했던 교육부는 지지부진했고, ‘개선안’이라고 내놓은 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개선안이라 쓰고 ‘개악 안’이라 읽어도 충분한 내용에 우린 분노했고, 또 한 번 뭉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송곳>에서 힘을 얻었다.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거요. 어떤 놈은 한 대치면 열대로 갚지만 어떤 놈은 놀라서 뒤로 빼. 찔러봐야 상대가 어떤지 알 거 아뇨. 내가 뭘 하면 재들이 쪼는지 내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싸우면서 확인하는 거요.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p92 최규석의 <송곳2> 중에서     "뺏어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반격하지 않으니까. 두렵지 않으니까.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p181 최규석의 <송곳2> 중에서     2021년 8월 5일 교육부의 발표가 났다. 돌봄교실을 확충하고 운영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우린 절반의 승리를 거둔 느낌이었다. 지자체로의 이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물꼬는 막았다. 그러나 최종 목표인 상시 전일제 전환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훅 들어온 내 삶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자 노동조합 교육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내 삶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엄마로서 딸과 ‘공정, 능력주의, 희생’에 대한 사회적 이야기를 나누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노조 활동’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소설책을 읽던 내가 ‘노동, 인권, 연대, 비정규직’에 대한 책을 읽고, 돌봄 전담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의 입은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고, 나의 손가락은 단톡방에 노조 소식을 퍼 나르고 있다. 내 팔은 ‘투쟁’을 외치기 위해 힘차게 들어 올리고 있으며, 내 발은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노조 회의나 파업, 궐기 대회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빨간불이 들어왔던 내 머리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밝게 빛나고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로맹이 발랑틴에게 받았던 달콤한 뽀뽀 같은 말랑함은 아니다. 아니, 교육부가 내 볼에 상시 전일제라는 말랑한 뽀뽀를 해 주길 원한다. 상시 전일제를 받는 날까지 나는 오늘도 노동조합 오렌지를 열심히 돌릴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더 열심히 돌릴 것이다. 나 자신, 돌봄 전담사,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떨어지지 않도록 파이팅!!        
  • 학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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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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